이번 포스팅에서는 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보러가기 공식영상 다시 보기 안내드립니다. 출연진 방송시간  안내드리고 7회 시청률 회차 정보, 공식 영상 7화 보러 가기 알려드리겠습니다. 본방 사수 못하신 분들은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넷플릭스 재방송 다시 보기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보러가기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재방송-다시보기-보러가기-공식영상-1회-2회-넷플릭스-회차정보-타임라인-출연진-방송시간-시청률-정보-1화-2화-같은-예능

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클라스가 확~다른 트로트 오디션의 원조, 오디션 사상 최고 우승 상금 5억! 차기 트로트 히어로를 찾습니다! 트로트 명가 TV조선과 함께 새 시대를 열 제2의 임영웅의 탄생시키는 프로그램 입니다.

 

김성주, 장윤정, 봄, 장민호, 김연자 등이 나오고 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은 TV조선에서 목요일 오후 10시에 방영됩니다. 아래에서 모바일에서도 감상이 가능합니다.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공식영상

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재방송은 TV조선을 통해서 재방송 됩니다.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공식영상 재방송 시간표는 아래를 확인 해주세요.

 

 

 

 

 

 

TV조선에서 볼 수 있으며 제가 알려드린 방법을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무료로 시청하시려면 아래 이미지 참고하셔서 다시보기 가능합니다.

 

 

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다시보기 링크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재방송-다시보기-보러가기-공식영상-1회-2회-넷플릭스-회차정보-타임라인-출연진-방송시간-시청률-정보-1화-2화-같은-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출연진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출연진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출연진 119명의 참가자가 대학생, 청소년, 독립, 현역, 챔피언 부문으로 나뉘어 경쟁을 펼칩니다.

 

15명의 심사위원이 노래를 듣고 누르는 하트 수로 결승 진출 여부가 결정 되는데요.   8개 미만의 하트가 제거되고, 9~14개는 예선, 15개는 결승에 진출합니다.

 

출연진 명단

강대성 13세
직업: 초등학생

강대웅 36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강성호 35세
직업: 보컬 트레이너

강재수 30세
직업: 대학원생

강진철 27세
직업: 군인

강태풍 32세
직업: 대학생

강한 25세
직업: 전 봅슬레이 국가대표
경력: 너의 목소리가 보여 참가자

고강민 45세
직업: 헬스 트레이너

고정우 24세
직업: 알바생

권도훈 13세
직업: 초등학생

길병민 29세
직업: 성악가

김다운 28세
직업: 가수

김민건 14세
직업: 중학생

김민진 48세
직업: 작곡가

김선근 39세
직업: 아나운서

김선준 33세
직업: 가수

김시원 37세
직업: 국악 아티스트

김영호 34세
직업: 아나운서

김용석 30세
직업: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용필 48세
직업: 방송인

김웅진 32세
직업: 레크레이션 지도자

김현민 43세
직업: 가수

김홍종 33세
직업: 소방구조대원

나상도 38세
직업: 가수
경력: 트롯신이 떴다2 준우승

남동현 33세
직업: 배우

노영훈 27세
직업: 레슬링 국가대표

노지훈 33세
직업: 가수

더 레이 38세
직업: 가수

마커스 강 31세
직업: 요리사

문은석 24세
직업: 가수

박건우 34세
직업: 창업 준비생

박도해 31세
직업: 뮤지컬 배우

박상보 35세
직업: 호프집 사장

박상우 37세
직업: 쇼호스트

박서진 28세
직업: 가수
경력: 나는 트로트 가수다 참가자

박성온 13세
직업: 초등학생
경력: 히든싱어 시즌7 송가인 편

박세욱 36세
직업: 가수
경력: 보이스트롯 우승자

박지현 28세
직업: 대학생

박진종 36세
직업: 폴댄서

서건후 13세
직업: 초등학생

서우리 41세
직업: 가수

서지유 10세
직업: 초등학생
경력: 내일은 국민가수 참가자

선율 27세
직업: 가수

성리 29세
직업: 가수

성민 37세
직업: 가수

성유빈 36세
직업: 가수

손빈아 31세
직업: 가수
경력: 히든싱어 시즌6 설운도 편

손헌수 43세
직업: 개그맨

송도현 12세
직업: 초등학생

슬리피 39세
직업: 가수

승국이 35세
직업: 가수

신민철 43세
직업: 가수

안성준 40세
직업: 가수
경력: 트로트의 민족 우승자

안성훈 34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안원중 19세
직업: 벨리 댄서

영광 23세
직업: 대학생

오장한 50세
직업: 보컬 트레이너

오주주 35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오찬성 24세
직업: 가수

왕준 38세
직업: 복합문화공간 운영자

용호 31세
직업: 식당 주방 보조

윤준협 23세
직업: 모델

원혁 35세
직업: 뮤지컬 배우

윤대웅 24세
직업: 비트박서
경력 :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6 참가자

이대원 32세
직업: 가수
경력 :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이도진 34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이사야 38세
직업: CEO

이상연 28세
직업: 취업 준비생

이은호 38세
직업: 배우

이진규 41세
직업: 퍼포먼스 공연자

이찬성 31세
직업: 가수

이하준 37세
직업: 호떡집 사장

일민 31세
직업: 가수

임성욱 31세
직업: 개그맨

임찬 29세
직업: 가수

임채평 26세
직업: 대학생

장송호 20세
직업: 대학생

장현욱 37시
직업: 건설 기술직

재하 30세
직업: 가수
경력: 트롯 전국체전 준우승자

전명진 38세
직업: 보험 설계사

정대왕 27세
직업: 복싱 코치

정민찬 35세
직업: 전 국립발래단 단원

정예준 14세
직업: 중학생

정재욱 32세
직업: 자영업자

정형찬 27세
직업: 댄서

전기호 12세
직업: 초등학생

조승원 10세
직업: 초등학생

주아성 41세
직업: 가수

진욱 29세
직업: 가수

진웅 39세
직업: 건설 현장직

진해성 33세
직업: 가수
(트롯 전국체전 우승자)

천재원 37세
직업: 가수

최대성 36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최도진 38세
직업: 자영업자

최수호 21세
직업: 대학생

최우진 32세
직업: 가수

최재유 35세
직업: 의사

최전설 30세
직업: 가수

최호우 34세
직업: 와인바 점장

추혁진 31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태욱 29세
직업: 가수

하동근 32세
직업: 가수

하태하 38세
직업: 가수

한이재 29세
직업: 가수
경력: 내일은 미스터트롯 시즌1 참가자

한정수 50세
직업: 배우

한태이 31세
직업: 가수

홍승민 18세
직업: 고등학생

황기동 40세
직업: 가수

황민우 18세
직업: 고등학생

황민호 10세
직업: 초등학생

휘찬 35세
직업: 디저트 카페 사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방송시간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방송시간은 매주 목요일 2022.12.22. ~ (목) 오후 10:00 입니다. TV조선에서 방영됩니다.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회차정보

1회 2022.12.22 (목)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제 삶을 걸었고, 남은 인생을 걸었습니다” 3년을 기다린 참가자들의 꿈의 무대! 배우, 슈퍼모델, 보디빌더, 국가대표가 이제는 트롯 가수가 된다. 1절 만에 올 하트를 받은 참가자부터 전원 올 하트를 받은 부서까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미스터트롯2 치열하고 뜨거운 마스터 예심을 통과해 왕관을 거머쥘 참가자는 누가 될 것인가!

 

 

2회 2022.12.29 (목)


트롯 판도가 뒤집힌다!


“여기서 끝장을 보겠습니다” 현역들이 나섰다, 진짜를 가리러! 트로트 가수의 이름을 걸고 벌이는 진검승부. 전통, 스트릿, 발레, k팝, 장르 총출동 트롯 샛별부터 탑클래스 현역들까지! 이제 트롯 판도가 뒤집힌다. 마스터들의 냉정한 평가 속에서 살아남는 자는 누구인가!

 

 

3회 2023.01.05 (목)


대망의 팀 미션이 시작된다!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참가자들 칼 갈게 한 전쟁 같은 팀 미션이 시작된다! 풋풋한 대학생에서 섹시한 어른이 된 대학부부터, 로커로 파격 변신한 현역부까지. 각자의 한계를 넘어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팀은 누구인가!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시청률

1회 - 20.2%
 
2회 - 20.8%
 
3회 - 20.9%
 
4회 - 20.9%
 
5회 - 21.3%
 
6회- 21.8%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넷플릭스 타임라인

미스터트롯2 - 새로운 전설의 시작 이미지

 

편성: TV조선 2022.12.22. ~ (목) 오후 10:00

 

시청률: 20.8% 닐슨코리아 2022.12.22.(목)


클라스가 확~다른 트로트 오디션의 원조, 오디션 사상 최고 우승 상금 5억! 차기 트로트 히어로를 찾습니다! 트로트 명가 TV조선과 함께 새 시대를 열 제2의 임영웅의 탄생!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기본 정보

방송 장르 예능
방송국가 대한민국
방송채널 TV조선
방송시간 목요일 오후 10:00
방송기간 2022년 12월 22일 ~
방송분량 70분
스트리밍 미정
몇부작 -
제작사 -
제작진 연출 전형주, 라수빈, 이자은, 정윤석, 현지인, 김서희, 정주혜, 정혜진, 송태헌, 지주희
작가 안영란, 유은혜, 김아름, 권민희, 류민지, 한지아, 김효진, 서영주, 윤지우, 박정아, 임이랑, 이하나, 전지영, 이주연, 김초록, 이지우, 이난주, 김찬미
재방송 방송시간
시청률 회차정보
출연진 김성주, 장윤정, 봄, 장민호, 김연자, 진성, 문희경, 이홍기, 츄, 강다니엘, 알고보니 혼수상태, 이현우, 홍지윤, 이은지, 김해준
줄거리 클라스가 확~다른 트로트 오디션의 원조, 오디션 사상 최고 우승 상금 5억! 차기 트로트 히어로를 찾습니다! 트로트 명가 TV조선과 함께 새 시대를 열 제2의 임영웅의 탄생!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상금 7회 7화

‘미스터트롯2′는 2019년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한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4번째 경연으로 이번 시즌에는 우승상금이 최대 5억원으로 상향조정됐습니다.

 

우승상금 5억원은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최초인데요! 미스터트롯1(1억원)보다 상금 규모가 5배나 커졌습니다. 미스터트롯2도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공개투표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재방송 다시보기 보러가기 7회 넷플릭스 몇시 공식영상 회차정보 타임라인 출연진 방송시간 시청률 정보 7화 공식영상 같은 예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예능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출연진 MC 심사위원 마스터군단

 

김성주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출연진

 

전직 MBC 아나운서 출신의 프리랜서 방송인.

유행어로는 "60초 뒤에 공개됩니다.",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해주세요! 이분은 바로! ", "제품 맛입니다!"[9]가 있다.
2. 상세[편집]
오랜 스포츠 중계 경력에 더해 슈퍼스타 K, 한식대첩, 냉장고를 부탁해, 복면가왕, 미스터트롯 등 생방송 프로그램이나 VS구도로 짜여진 프로그램 진행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행 솜씨를 보여준다. 일례로 복면가왕이 특집으로 인해 생방송이 되었을 적에는 거의 방송 사고에 가까운 상황이 이어졌음에도 침착하게 방송을 진행하며 수차례 사고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시청률 35%를 기록했던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는 집계가 완료되지 못하는 초대형 방송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신들린 진행력으로 성공적으로 수습했으며[10] 마리텔에 나왔을 때는 3시간 생방송 내내 오디오를 비우지 않고 채팅창 드립을 중계하고 안정환의 썰들을 이끌어내는 신묘한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은 스포츠 중계를 해 온 그의 짬밥의 위엄을 나타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나테이너 전향 이후 한참의 공백기를 겪다 다시 활발하게 활동할 무렵 무릎팍도사에 나왔을 때, 아나운서 시절 중계하던 경기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긴장감 있게 뱉어냈다.

그외에도 방송연예대상 라이브진행과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굵직한 관찰예능도 성공시키며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파업 사태를 맞은 MBC의 대타로 중계를 했으나[11] 이로 인한 논란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중계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MBC와의 계약도 해지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그래서 MBC의 러시아 월드컵은 중계는 안정환·서형욱 축구 해설위원과 당시 재입사한 김정근을 비롯해 김나진·허일후 캐스터 등 MBC 내부 인물을 주축으로 중계방송을 맡았다.#
3. 경력[편집]
3.1. MBC 입사와 그 이전[편집]
MBC 아나운서 김성주
MBC 아나운서 시절 김성주.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 소식을 전하는 앵커였다.#

2000년 공채 아나운서로 MBC에 입사했다. 본래는 기자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같이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한 친구가 무심코 건넨 ''야, 너 아나운서 같이 생겼어." 한 마디에 아나운서로 노선을 변경, 별 기대 없이 첫 지원을 했는데 덜컥 최종면접까지 가게 되었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아나운서를 준비하게 되었다. 첫 지원에서 최종면접까지 갔기 때문에 조금만 더 준비를 하면 금방 아나운서로 입사할 줄 알았으나, IMF로 인해 각 방송사가 아나운서 채용을 줄이거나 취소하였으며 그나마 면접 기회를 얻어도 연이어 낙방했다고 한다.

MBC 입사 전에는 케이블 스포츠 채널인 한국스포츠TV(현 SBS Sports)에서 캐스터를 했으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MBC 입사 후에도 스포츠 중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MBC에서 첫 스포츠 중계를 하게 됐을 때는 원래 담당하던 캐스터가 사정상 쉬게 되어 땜빵으로 들어간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스포츠채널에서 중계를 하던 모습을 봐뒀던 PD들이 꼭 캐스터로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의 인재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스포츠TV에 입사한 지 1년 만인 1998년에 IMF로 회사가 기울어 250명의 직원이 40명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하루에 4경기씩 종목 가리지 않고 중계를 했다고 한다. 채널이 없어질 뻔해 소속 직원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고, 그중에 김성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최저생계비를 받아가며 중계를 했으며, 광화문에서 회사를 살려 달라며 전단지를 나눠주던 것을 우연히 광화문에 본사가 있는 조선일보의 기자인 작은누나가 보고 "성주야 너 지금 뭐하냐"고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본인 생애에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고.

김성주 스포츠TV
그의 스포츠TV 시절 모습

그런 이유로 노예처럼 굴러서 3년간 중계한 경기가 1,000 경기가 넘는다고 하며, 결국 목이 완전히 잠겨서 PD에게 "오늘은 도저히 중계를 못 하겠다"고 했으나 대체인력이 없어서 쉰 목소리로 계속 중계를 했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떠들어도 절대 잠기지 않는 강철 성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경험으로 축구, 야구, 농구, 핸드볼 등 종목만 말하면 자동으로 멘션이 튀어나온다. NBA 중계는 지금도 아나운서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으며,[12] 야구 쪽으로는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을 이효봉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하기도 했었다. 이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차범근-차두리 부자와 함께 중계하면서 현장감을 잘 살린 중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여세를 몰아 당시 막 퍼지고 있던 아나테이너 붐에 탄 MBC의 기획에 발탁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끼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데다, 자신의 공채 합격 뒷이야기나 방송 커리어를 보면 애초에 프라임타임 뉴스 메인 앵커는 본인도 포기하고 사측에서도 생각이 없었던 모양. 때문에 캐스터 일 외에는 일찌감치 예능에 주력해서 자신만의 포지셔닝에 성공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전까지 예능에 출연한 아나운서들의 모습은 설 연휴나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아나운서의 단정한 이미지를 유지하려다 다른 출연자들의 짓궂은 장난에 망가져서 트로트, 댄스를 하는 정도였지만 김성주는 아나운서의 훈남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가발에 쫄쫄이 츄리닝까지 입고 개그맨 못지않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국민 아나운서급의 인기를 얻었다. 거기에 2006년에는 그 해 30회째를 맞이했던 MBC 대학가요제 MC를 맡기도 하였다.

 

 


장윤정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출연진-장윤정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트로트' 하면 떠오르는 가수 중 한 명이자, 2000년대 트로트의 부흥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 데뷔 후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많은 트로트 가수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다.
2. 상세[편집]
2.1. 가수 데뷔 전[편집]
1980년 2월 16일 충청북도 중원군 금가면 월상리(現 충주시 금가면 월상리)에서 1남 1녀 중[12] 장녀로 태어났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가난해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다.[13][14] 어릴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장윤정은 자신의 친정 아빠와 같이 살고 있었다. 상견례때도 장윤정의 소속사 대표와 장윤정의 친정 아버지인 장동수씨만 참석할 정도로 장윤정 본인도 자기 친정 엄마와 친정 동생이랑 연끊고 살고 있다고 한다. 장윤정의 친정 식구들 중 아버지만 정상적인 분이라서 그런지 가정적 불화로 이혼하고, 연끊고 살아온 탓에 지금까지 장윤정은 아버지하고만 같이 살아온 것이다.

대학교 시절에는 자취를 했는데, 난방비가 없어서 겨울에 자다가 추위에 잠이 깰 때마다 헤어 드라이어로 이불 속을 데우고, 강아지를 껴안고 다시 잠이 들 만큼 아주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토크쇼에서 밝히길,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부모가 진 부채 때문에 자신도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고, 당시 은행 직원이 모니터를 돌려서 신용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 상태에서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점 안에서 자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엄청나게 창피했다고 한다.[15] 다행히도 장윤정의 사정을 들은 대학교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으며,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친구들이라고 한다.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내 안의 넌'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첫 공식 방송 무대에서 너무 떨었다. 제주도에서 열린 행사에서 댄스곡을 불렀는데 의외로 잘 부르고, 안무 실력도 수준급이다. 사실 댄스 가수로 활동할 기회도 있지만, 본인은 트로트가 제일 편하다고 실토했다. 사실 비음 때문에, 다른 장르와는 잘 안 맞는다고 말한 음반 제작가도 있다.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음반을 낼 돈이 없어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16] 실제로 '어머나'로 뜨기 전까지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17]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등에서 재연배우 일로 전전하였다. 이 시절 모습은 이후에도 종종 케이블에서 나온다. 본인도 이것 때문에 돈을 밝혔고, 그래서 쉽게 갈 수 없는 트로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결국은 크게 성공했다. 다만 너무 상업성만 노렸다고 질타해서 이후, 노래는 같은 트로트지만 스타일을 바꾸었다.
2.2. 가수 데뷔 후[편집]

음악중심에서 어머나를 부르는 장윤정
2004년 '어머나'로 데뷔했는데 말 그대로, 전국을 강타했다.[18]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트로트가 1위를 한 것은 김수희의 '애모'가 93년 상을 받은 이후 11년 만의 일이었다.[19] 작은 소속사에서 데뷔한 만큼 별다른 홍보도 없었으나,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는 곡이 되며 알아서 홍보가 되었다. 트로트는 중장년층만 부른다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최초 사례. 서태지가 음악시장을 재편한 이후로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무송의 ‘사는게 뭔지’, 김수희의 '애모', '남행열차', 김혜연의 '참아주세요'[20]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 히트곡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20대 초반 여가수가 본격 트로트로 데뷔하고 크게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 블루 오션 개척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웬만한 아이돌 가수보다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어머나'로 쌓은 인지도로 2집 '짠짜라'와 3집 '이따이따요', 4집 '장윤정 트위스트'를 냈는데, 어머나 못지않게 히트를 치며 적자를 낸 음반이 없다. 음반을 판매한 수량은 둘째고, 보통은 특정 세대만 기억하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거의 모든 세대가 자기 노래를 기억하는 건 엄청 드문 일이다. 간드러지는 음색 자체가 트로트랑 적합하고, 넉살 좋은 이미지는 중장년~노년, 심지어는 10대까지 아울렀다.

2007년부터 슬슬 게스트로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일단 우리 결혼했어요 파일럿으로 출연했으며, 그 후 각종 방송에 조금씩 출연 횟수를 늘리면서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고정 출연한다.

이휘재와 함께 도전 1000곡 MC를 맡았다. 진행력은 역대 여자 MC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것보다는 무대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보여, 약간 호불호가 갈렸지만 프로그램 성격과 잘 어울리고, 그런 진행 스타일을 선호하는 해외 동포를 비롯한, 장년층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좋아하는 쪽이 더 많았다. 이따금씩 왕중왕전에서 있는 패자부활전에서 노신(노래의 신)으로 나와 게스트들과 대결했는데, 짬밥 자체가 허풍이 아닌 걸 여실히 증명했다.

2011년 9월 12일 나는 가수다의 스핀오프격 추석 특집 프로그램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를 불렀는데 원곡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좋았지만, 호불호가 갈렸으며 일부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다. 원곡은 락발라드인데 트로트식 바이브레이션이 나와 본인도 연습 과정에서 계속 이걸 자제하려고 했지만 트로트 창법이 몸에 베였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일본에서 발표한 2집 타이틀 곡인 '最期の川' 로 일본 유선방송 엔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당 곡은 한국에서 발매했던 '초혼'의 번안곡으로, 기존 장윤정표 트로트와는 조금 다른 애절한 곡이다.

2006년 '만화로 풀어가는 스타고백' 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데뷔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인생이 만화로 보여지기도 했는데, 상위 논란들을 생각한다면 더욱 안타까워지는 이야기가 된다.[21]

2014년 8월, 소속사 인우기획이 갑작스럽게 폐업하게 되면서 무적(無籍) 상태가 되었다. 장윤정의 계약기간은 이미 만료된 지 오래였지만, 데뷔 때부터 함께 해 왔으니 당연히 함께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본인은 충격이 매우 컸던 듯. 이후 많은 소속사들이 러브콜을 보냈으나, 도전 1000곡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함께 출연한 이휘재가 소속된 코엔스타즈와 계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코엔스타즈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관련기사.

2015년 발표한 7집 앨범의 타이틀곡 '반창고'가 다시 대박을 내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마쳤다. 타이틀곡 선정 능력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2017년 3월에 7집 앨범의 수록곡인 '벚꽃길'을 재편곡하여 벚꽃길 2017을 발표했다. 또한 7년 만에 음악 방송도 출연하였다.
2.3. 창법[편집]
데뷔 초와 2012년을 비교하면 창법이 변화했다. 데뷔 초에 불렀던 '어머나'와 '짠짜라'의 경우에는 발음이 굉장히 또박또박한 편이었고,.포인트에서 잠깐씩 쥐어 짜는 듯한 창법이었다. 좀 더 말하자면 확실히 부를 때 좀 더 간드러지게 변했다. 본인 스스로가 일부러 창법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가요계에 몸 담은 지가 꽤 되어 자신의 노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서 기교 형식으로 그렇게 된 건지는 미지수다.
2.4. 행사의 여왕[편집]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출연하려고, 1년에 10만㎞ 정도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모 토크쇼에서 MC몽을 능가하는 '하루 12회 행사' 경험을 이야기해 주변이 깜짝 놀랐다. 전성기 시절에는 행사비로만 하루에 1억원을 번 적도 있다고 한다.[22] 그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장윤정 몸값을 추정하면, 사실상 1년에 행사로만 100억 원 정도를 번다고 추측할 정도[23]다. 그래서 1년 기름값은 억대, 교통 법규를 어겨서 내야 하는 과태료가 일곱 자리라는 썰도 있고 실제로 밝힌 교통 부대비용이 진짜로 수천단위를 넘는다고 한다.

그 명성을 알수 있는 일화들이 여럿 있는데...
1. 예전에 이동할 때는 차를 이용했지만, 나중에는 비행기로 이동한다고 했다. 비행기로 이동해서 남는 시간에 다른 행사를 더 참여하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장윤정 본인은 '자신의 노래는 시골 장터에서 시작했으며,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현재까지도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장윤정 급의 가수라면 폼나게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몸도 편하고 수익도 더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장윤정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전국에서 자기가 행사를 가보지 않은 곳은 날씨 문제 때문에 도저히 가기 어려운 울릉도와 독도 뿐이라고 한다.

2. 당시 사회적으로 명성있는 KBS 4년차 아나운서인:도경완과 결혼 시기에 어머니와 남동생이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지만 결혼 이후 클래스 어디 안간다고 탕진한 돈 만큼 금방 축적했다고. 두 자녀를 키우면서 행사 스케쥴을 많이 줄였었으나, 둘째(도하영)를 출산한 뒤에 출연한 프로그램[24]이 줄줄이 대박을 치면서, 2020년 하반기에는 2010년이전 스케줄로 복귀했다고 한다. 하루에 행사 2~3개는 기본이고 한달에 하루도 못 쉰다고. 후발주자 트로트 가수들이 많아져서 수입이 많이 줄었지만, 역시나 SSS급 대우를 받는지라 한번 참석할 때마다 웬만하면 몇달치 생활비는 그냥 벌어온다고 한다.[25]

3. 남편도경완은 은근한 캠핑 애호인으로 알려졌는데,어느날 도경완이 캠핑물품 중고거래 사이트를 보면서 '윤정씨,나도 이런 캠핑 애호인 능력을 살려서 방송에서 캠핑 관련프로그램을 맏아볼까??"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장윤정은 당시에는 무심한듯 흘겨들어으나,언제까지 남편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퐁퐁남같은 이미지를 불식시켜주기 위해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제작진들에게 '코너 속에 코너로 저희 남편과 아이들이 캠핑 다니면서 촬영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실제로 슈돌에서 도경완과 연우+하영이가 <달리는 아빠학교>라는 콘텐츠를 1년 4개월동안 촬영 할 수 있였고,프리선언한 뒤로는 LG헬로비전에서 캠핑카로 여행다니면서 전국각지의 트로트고수들을 발굴해내어 실제 트로트가수로 육성해주는 <장윤정,도경완의 도장깨기>를 런칭하였다. 이런 면모로 보아 트로트가수로서 가창실력과 성실함을 넘어 방송 PD로서의 자질,간접적으로 하는 외조의 능력도 은근한 모양새이다 .[26]

이러한 여왕의 권좌는 TV에서 빛을 발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TV에 안 나오는 기간이면 총합 집값만큼의 출연료를 받고 전국 노래투어나 다른 콘서트에 참여하느라 못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가수들도 마찬가지지만 트로트 가수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며 전국에 퍼져 있는 어르신들에게 흥도 드리고 인사도 하고 여러 활동이 겹치면서 TV에 나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장윤정이라면 이 상황에서 나오는게 기적과도 같을 것이다.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재방송-다시보기-보러가기-1회-넷플릭스-몇시-공식영상-회차정보-타임라인-출연진-방송시간-시청률-정보-1화-같은-예능

 

대한민국의 예능 MC.
2. 활동[편집]
부천 복사골가요제에서 아차상을 탄 것을 계기로 가수의 꿈을 키웠다.[3] 그 때 부른 노래가 패닉의 달팽이였다고. 중3 때 혼성그룹 "키"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1999년과 2001년 각각 뉴클리어, 레카[4]의 멤버로 활동했으나 셋 다 쫄딱 망했다. 이후 그룹명을 '가요계의 열쇠가 되자'고 해서 '키'라고 했는데 자기네가 잠긴 채 사장님은 해외로 튀고, '핵폭탄급 반응을 일으키자'해서 뉴클리어라고 했는데 자기네들이 터지고,[5] '가요계를 이끌어보자'해서 렉카라고 했는데 끌려갔다고 스스로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Key 2집 타이틀인 'Forever love'는 청각장애인인 신동엽의 친형을 모티브로 뮤비를 만들었다.

그러다 케이블 방송의 VJ로 활동, 지상파를 비롯한 100여 명이 넘는 취재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시 톱스타였던 김희선의 인터뷰를 당당히 따내어 유명세를 탔다. 이를 계기로 MBC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에 리포터로 발탁되어 다시 지상파에 입성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감초로 활약하며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이 섹션TV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알리고자 마이크에 자신의 예명인 BOOM을 크게 새겨넣고 소개시 "붐이에요!"라는 자체 유행어를 제작,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해서 예능 속 이미지를 확실히 굳혔다.

과거 스스로 밀던 유행어로 "붐이에요!"와 "나인틴나이티나인!"[6] 그리고 "뉴~ 규"[7]가 있었다. 방송에서 경솔한 발언을 하고 논란이 되자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말한 "제가 좀 경솔했습니다"라는 말도 유행어가 되었다.

이후 강심장에서 '붐아카데미'라는 자신만의 라인을 구축했다. SUPER JUNIOR의 이특, 은혁, 신동 등이 대표적. 입대 후에는 수제자 이특에게 '특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물려주었다.[8][9]

2011년 8월 22일 군대 전역을 했으며, 2011년 9월 1일, SBS 파워FM '붐의 영스트리트'로 DJ 활동을 시작했었고 청춘불패 시즌2에도 나왔다.

하지만 연예병사 시절 과도한 특혜 논란으로 이미지가 박살났고 2013년 불법 도박 사건에는 연루되면서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방송 활동을 재개했으나 그간의 가벼운 이미지가 역으로 시너지를 일으켜 호불호가 강력히 갈리는 연예인이 되었다. 방송 활동을 재개한 이후에는 예전만한 호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으나 지상파, 종편, 케이블 등에 출연하는 중이다.
3.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붐(연예인)/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 번 사고를 치기 시작하자, 과거의 사건사고들도 재발굴되고, 원래부터 있었던 비호감 이미지와 경솔한 발언, 각종 인성 및 행실 문제로 인해 꼴불견의 시선을 가지던 사람들도 합세를 하며 그의 이미지는 급속도로 나빠져버렸다.[10] 자숙 복귀 이후로는 큰 사고 없이 조용히 활동하고 있지만 현재도 그에 대한 호불호와 비호감을 가지는 여론은 존재하는 중이다.

무한도전의 전진이 실패한 숨겨진 원흉.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과거 사진을 공개했다. 이때 전진과 상당히 흡사했고 이것을 이용해 클럽이나 나이트장에서 여성에게 접근해 성추행과 성희롱, 심한 경우 원나잇도 했다. 이때 클럽의 배경(어두운 조명)과 모자로 얼굴 가린 상태라서 당한 피해자들은 다 전진인줄 알았으며 보상을 요구했다. 그 결과 전진만 욕을 있는대로 먹었다. 이러고 무한도전 지못미 특집에서 (전진 신화 탈퇴 당해) 라는 거짓 기사를 진짜 기사로 받아들여 1~2시간 동안 집에서 못 나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방송국과 소속사, 기자들한테 로비 활동을 해서 아무도 모르고 실제로도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린다.
4. 복귀 후 활동[편집]
2014년 10월, 복귀 계획이 있다는 기사가 떴다.

연예 오락채널 E채널의 용감한 작가들의 녹화를 했다. 기사. 그리고 2014년 10월 30일 결국 방송에 나와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다. 기사. 같은 방송의 11월 6일 방영분에선 이승훈 PD와 김준호를 찾아가 회초리를 맞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기사

그 후 게스트로 출연했던 용감한 작가들의 고정 MC가 됐고, 기사. 케이블 방송에 이어 지상파에서도 2015년 1월 2일 복귀했다.

MBC every1 천생연분 리턴즈 MC로 MBC에도 복귀했다. 2015년 4월 9일 부로 지상파인 MBC로 천생연분 리턴즈가 잠시 옮겨졌으며 4월 말에 다시 MBC every1으로 돌아갔지만, 시청률 부진으로 1달 만에 종영되었다.

2015년 12월 2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방영분에서 복면가수의 정체를 추측하면서 김정민이 그에 대해 언급했는데, 사진, 영상 자료가 필터링 없이 멀쩡히 나온 것으로 보아 출연금지가 해제된 것으로 추정된다.[11]

K팝 스타 시즌5로 복귀했다.

2016년 7월 1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흑백논리 체스맨이라는 가명으로 나와서 듀엣 파트너인 장기알과 얼굴들과 패닉의 달팽이를 부른 뒤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몇 번 추리 시간에 다른 많은 패널들에 의해 그가 언급되었으며, 그 와중에 김구라는 저렇게 노래 못 한다고 디스했는데, 의외의 가창력을 보여주자 김구라만 뻘쭘해졌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연예인 판정단 대부분이 아이돌이나 젊은 뮤지컬 배우로 추측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멘붕했다. 이와는 별개로 그가 나온 것에 대해 네티즌들은 왜 나왔냐고 분기탱천했으며, 거기에다 PD들까지 이런 놈을 섭외했다는 이유로 같이 까였다.

2016년 7월 14일에는 비타민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 시즌2 출연이 확정되었다.

2016년 SBS 연기대상에서 인터뷰 진행자로 나왔으며, 애먼 이휘재 때문에 그도 까였다.[12]

2017년 6월 5일, KBS2의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패널로 출연했다.

복귀 이후에 라디오 진행도 다시 하고 있는데, 러브FM에서 2016년부터 2017년 3월 중순까진 붐의 드라이빙 클럽을 진행했다가 2017년 3월 20일 부로 붐붐파워로 파워FM에 복귀했다. 자타공인 라디오 청취율 1위 두시탈출 컬투쇼 다음이기 때문에 청취율에도 많은 영향이 있을 듯 하다. 다만, 몇몇 청취자의 경우 붐붐파워가 너무 열정적이고 거슬리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적응하지 못하고 러브FM으로 이사한 올드스쿨로 온 청취자들도 있었다.[13]

7월 30일에는 미운 우리 새끼에 나왔는데, 정확히는 고정 중 하나인 토니안이 붐한테 찾아간 것. 토니 안이 미스코리아 MC를 맡게 되어서 붐한테 찾아가 붐이 토니 안한테 조언을 한 거다. 이후에도 토니안과의 친분으로 미운 우리 새끼에 간간히 출연 중이다.

2018년 8월 경에는 에브리봇 CF 모델로 발탁됐다.

복면가왕 96차 경연에서 일일 판정단으로 참여했다.

2019년 7월 17일부터 tvN에서 방영하는 뭐든지 프렌즈에서 메인MC(컨셉상의 명칭은 마트 점장)를 맡았다.

물론 여전히 각종 커뮤니티에선 붐 떡밥이 풀리면 싫다/좋다 의견이 갈린다. 범죄 저질러서 욕을 그렇게도 먹고 묻힌 이후로 다시 도전하는 그 근성이 대단하다는 부정적인 평가와 붐 특유의 인상과 캐릭터성에 대한 비호감, 재기에 성공하게 된 흥행작들이 붐붐파워, 도레미 마켓, 트로트 시리즈에만 집중적으로 쏠려있어 전성기라고 보기 힘든 부분도 존재하여 여전히 붐에 대해서 안 좋은 호불호는 꾸준히 유지 중이다.

 

 


장민호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재방송-다시보기-보러가기-1회-넷플릭스-몇시-공식영상-회차정보-타임라인-출연진-방송시간-시청률-정보-1화-같은-예능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경력을 접어두고 순수하게 데뷔 연차(97-)[20]만 따지고 보면 미스터트롯에 마스터로 출연했던 장윤정(99-), 신지(98-), 김준수(03-), 조영수(03-), 박현빈(06-)보다도 먼저 데뷔했다. 물론 본격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2013년 이후. 조영수 작곡가의 말에 의하면, 실패한 1세대 아이돌들이 겪는 안타까운 길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이라 한다.

실제로 그의 성공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1997년 아이돌 보이그룹 "유비스"의 U-BeS라는 앨범으로 데뷔(유비스 문서 참조)했지만 망했고[21], 이후 2004년 발라드 그룹 "바람"[22]으로 재데뷔했지만 또 망했다. 2011년 트로트가수로 전향하며 '사랑해 누나'[23]라는 곡을 냈지만, 또 망했다. 이후 KBS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 출연해 렌과 함께 "렌미노"라는 팀을 이뤄 우승까지 했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시청률 폭망으로 망했다.[24]

그러다가 드디어 2013년에 '남자는 말합니다'가 성인가요 시장에서 히트하면서, 17년 동안의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인기가수가 되었다. 맨처음에는 반응이 없었지만 4-5년이 지난 후 행사에서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트로트 장르의 특성상 메인스트림 방송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서 2~30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았겠지만, 미스터트롯 이전에도 이미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트로트계의 BTS였다.

이후 미스터트롯 출연 소식에 함께 출연한 출연자들도 상당히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스터로 나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 연차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데뷔 동기가 젝스키스 쇼미더머니로 치면, 매드클라운이 마미손으로 출연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결론적으로 미스터트롯 출연을 통해 대박을 치며 20년 넘는 긴 가수 생활 끝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김연자

미스터트롯2-새로운-전설의-시작-재방송-다시보기-보러가기-1회-넷플릭스-몇시-공식영상-회차정보-타임라인-출연진-방송시간-시청률-정보-1화-같은-예능


대한민국의 가수. 조용필과 함께 원조 한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거물 가수이다. 일본에서는 8090년대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한국인이다. 2010년대 이후는 국내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2016년 이후에는 아모르파티가 국내에서 역주행하며 대히트를 쳐 젊은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 데뷔 전[편집]
김연자ㄴ 001

1959년 1월 25일 전라남도 광주시 사직동[6](現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 145-21)에서 태어났다.[7] 큰집과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한 집에서 두 명이 태어나면 안 된다며 둘째인 김연자의 엄마에게 밖에서 낳으라고 해서 엄마는 마당에서 김연자를 출산했다. tv조선 마이웨이 83회

아버지가 이발소를 했는데 김연자가 5~6세 때부터 매일 손님 앞에서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단골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연자야 노래 불러라"고 외쳤다고. 아버지는 이발소 영업이 끝난 후에 가게 안에서 1시간 동안 전축으로 이미자 노래를 틀고 김연자에게 연습하라고 한 뒤 나갔다고 한다.

국민학교 3학년 쯤 큰엄마가 내일 광주공원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 나가라며 참가금 2~3백원을 줬는데, 당시 김연자의 용돈은 10원이었다. '어린 나이에 유행가 부르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동요를 불렀는데, 떨어져서 참가상으로 소주 1병을 받았다고 한다. 참가금으로 큰 돈을 줬는데 상을 못 탔다고 큰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국민학교 4학년 때 가요교실 학원[8] 선생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니 무료로 다니게 해줘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5년을 다녔다. 또래 친구들은 동요를 좋아했지만 김연자는 트로트를 불렀다고 한다.

국민학교 5학년 때 광주의 대표적인 노래 대회였던 <벚꽃 노래 자랑>에 친구 정우순과 함께 출전했다. 펄 시스터즈 등이 똑같은 옷을 입고 노래하니까 우리도 똑같은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시계를 전당포에 맡긴 돈으로 옷을 맞춰줬고, 인기상을 탔다. <벚꽃 노래 자랑>은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프로그램이라 많은 광주시민들이 시청을 했고, 그 후 수피아여자중학교에 입학하니 노래자랑에 나왔던 김연자를 알아봤던 학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는 오락 부장이었다. 선생들이 자주 교단에 불러내 노래를 시켰다고 한다. 1973년 14세였던 중학교 3학년[9] 2학기 때는 열흘 정도 공연장에 따라다니느라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쇼를 다 보고 학교에 왔더니 수업 미달로 정학을 당했고, 아버지가 차라리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가서 가수를 하는게 어떻냐며 열차표를 직접 사줬고 한다. 엄한 아버지를 무서워했기에 거역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김연자는 홀로 상경했다.

서울에 상경한 그녀는 미아리[10]의 작은아버지 집의 작은 방에서 작은아버지 내외, 사촌동생 4명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허나 광주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가수 유망주였으나, 서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작은 아버지와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다 떨어졌다고 한다. 작은아버지가 '쇼에 가서 조카가 노래하니 써주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다녔지만 모두 탈락. 나훈아 콘서트에도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문전박대 당했다고 한다.

후에 어머니와 동생들이 따라서 상경하여 단칸방 사글세 살이를 시작했는데, 옆집에 부유한 수양엄마[11] 집에서 매일 전축을 틀고 노래 연습을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낙방하여 답답한 마음에 상경한 어머니를 따라 관악산 어느 절로 올라갔고, 그 절에 있던 스님이 '21세에 꽃가마를 탈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는 김연자가 출세하기 시작한 나이와 비슷하다.

동향 출신의 선배 가수 이영숙의 소개로 청계천에 있던 <오아시스 레코드[12]> 사장에게 오디션을 봤고,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는 김연자는 그 자리에서 드디어 합격한다. 하지만 말은 합격인데 가난한 집안에 수입이 없는 김연자의 처지를 안 사장은 데뷔가 아니라 회사 3층 공장에서 월급 2만원에 카세트 테이프 만드는 일을 시킨다. 일하다가 1시간은 2층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작곡가 김학송에게 노래를 배우며 지냈다.

어느 날, 오아시스레코드에서 한 평론가가 어느 카바레에 신인가수가 필요하다며 오디션을 권했다. 낮엔 일하고, 밤엔 나이를 18세로 속이고 비어홀, 카바레 등 3곳의 밤무대에서 월 6~7만원을 받으며 노래생활을 시작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엔 유명 가수가 노래하고, 무명인 김연자는 한가할 때 노래를 했다. 당시엔 이미자와 목소리가 비슷해 '제2의 이미자'라고 내세웠다.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은 없었고, 딸이 가수가 됐다며 학교를 못 다니게 했다고 한다. 남들은 공부하고 친구들하고 놀 때 자신은 서울에서 노래를 해야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었다고 한다. 너무 빨리 사회인이 되어버려 학생의 청춘이 없었다고. 결국 김연자는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하여 두 동생을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한다. 물론 나중엔 가수가 되게 해준 아버지께 고마워한다고 한다.

 

 

 

 

 

이상으로 미스터트롯2 새로운 전설의 시작 재방송 다시보기 보러가기 6회 넷플릭스 몇시 공식영상 회차정보 타임라인 출연진 방송시간 시청률 정보 6화 공식영상 같은 예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