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재방송 6회 다시 보기 안내드립니다. 등장인물 관계도와 방송시간을 안내드리고 시청률 회차 정보, 공식 영상 6화 보러 가기 알려드리겠습니다. 본방 사수 못하신 분들은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넷플릭스 재방송 다시 보기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JTBC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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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은 대한민국의 최정상 뮤지션들이 버스킹을 통해 길거리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라이브 공연을 선보인다 프로그램 입니다.

 

임재범, 박정현, 김종완, 하동균, 강민경 등이 나오고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은 JTBC에서 금요일 오후 10시30분에 방영됩니다. 아래에서 모바일에서도 감상이 가능합니다.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재방송 다시보기 보러가기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재방송은 JTBC를 통해서 재방송 됩니다.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재방송 시간표는 아래를 확인 해주세요.

 

 

 

 

 

 

JTBC에서 볼 수 있으며 제가 알려드린 방법을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무료로 시청하시려면 아래 이미지 참고하셔서 다시보기 가능합니다.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다시보기 무료 - 누누(noonoo)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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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정보(시청률, 몇부작, 회차정보)

방송 장르 예능
방송국가 대한민국
방송채널 JTBC
방송시간 금요일 오후 10:30
방송기간 2023년 01월 06일 ~
방송분량 70분
스트리밍 -
몇부작 -
제작사 -
제작진 -
재방송 방송시간
시청률 회차정보
출연진 임재범, 박정현, 김종완, 하동균, 강민경, 김현우, 존박, 김필, 헤이즈, 최정훈, 김도형, 정동환, 흰, 정성하
줄거리 대한민국의 최정상 뮤지션들이 버스킹을 통해 길거리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라이브 공연을 선보인다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출연진

 

임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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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록 음악, R&B, 발라드 가수이자, 한국 최초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1집 보컬리스트다.

1986년 서울고 동창인 신대철의 밴드 <시나위> 1집에 참여하여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면서 대중 음악계에 데뷔를 했다. 참고로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탈 음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8] 스스로를 헤비메탈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2. 가창력[편집]

외인부대 - 쥴리

Michael Bolton -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소리 좋다라는 칭찬이 가장 설레요. 쑥스러운 척은 하지만, 속으로는 그럼, 하늘에서 받은 건데 괜찮지 해요(웃음) 진심 어린 눈동자로 절 보고 손잡고 노래 잘 한다고 할 때의 그 감흥이란,정말 그 소리를 들으려고, 0.5초도 안 되는 기쁨을 누리려고 이제껏 칼을 간 거예요. .
임재범
맹수의 포효를 연상케 하는 가창력은 풍부한 성량과 두터우면서도 애절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임재범의 이 음색이 얼마나 좋은가 하면, 흔히 말하는 대부분의 음색 좋은 가수들이 소화할 수 있는 종류의 폭이 제한적인 반면 임재범은 록, 발라드, R&B, 소울, 포크, 블루스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자신만의 색깔과 독창성으로 소화해낸다.
임재범의 창법은 락음악과 소울, 팝 음악 등 다양한 장르 가수들의 영향을 받아 완성되었다. 임재범이 팬카페나 라디오에서 밝힌 바로는 락 쪽으로는 데이빗 커버데일, 로니 제임스 디오, 롭 헬포드. 소울이나 팝 쪽으로는 스팅, 제임스 잉그램, 루더 밴드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녹음할 때 곡에 어울리는 특정 가수들의 소리를 썼기에 몇몇 곡에 그들의 소리가 숨어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다양한 창법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라이브할 때 힘들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Rock In Korea - The Same Old Story
Asiana - Missing You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지금은 사라진 그의 블로그에서 임재범과 영국 거주 시절 함께 했던 SARANG 시절을 회상하면서 "드럼 연주자가 영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밴드 "Marmalade"의 후기 드럼 연주자로 활동했던 친구라, 주위에 많은 유명 음악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Michael Schenker 밴드의 보컬 Gary Barden을 추천했죠. 그러나 저는 밴드 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인 보컬을 이야기했었죠. 그래서 급기야 재범이를 영국으로 불러오게 된 겁니다."라고 쓰고 있다. 임재범이 영국 본토 시장 공략에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탁월한 락 보컬로 여기고 있었다고 봐도 될 듯하다.

ManiaDB 임재범 보컬, 작곡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 Rock의 사관학교 시나위, 국내 Rocker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룹 외인부대, 아시아나 등의 활동으로 솔로 데뷔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임재범 그가 그전 그룹 활동에서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힘의 아성을 갈무리한 솔로 1집 <이 밤이 지나면>을 출반했을 때 그를 기억한 팬들의 성원과 반응은 그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판매고인 60만장의 앨범 판매로 확인되었다.

임재범 - 고해
1998년 여름 많은 음반 관계자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재범 매니아들의 필수 구입 앨범 3집이 출반되었다. 인류 근원에 관한 엄청나고 난해한 메시지. 신과 인간에 대한 그만의 유니크한 해석. “Return To The Rock”의 기치를 내건 그의 3집은 그 구성의 특이성과 전격적인 출반 일정으로 화제를 일으키며 한국 Rock의 부활을 꿈꾸는 많은 Rock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었다.

당시 앨범 작업에 참여한 후배 뮤지션과 녹음 관계자는 지금도 그는 그때 미쳐있었다. 3집 음반에 대한 열정으로 불가사의한 능력이 인간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건 그때 그의 모습이었다라고 회고한다.

2006년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이 말하길 리즈 시절 임재범은 롤플레잉 게임 들어갔을 때, 전사이면서, 마법 배우고, 아이템 긁어모아서 칼 바꾸고, 갑옷 바꾸고, 투구 바꾸고,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손에 넣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 같았다며, 영국적인 보컬리스트들의 흉내내기를 통해서 목소리를 단련시켜 나가고 있던 젊은 보컬리스트가, 또 그 이후에 아시아나 등의 여러 락밴드들을 거치게 되면서, 이제 정제되고 단련되고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올라간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 이후에 소울이라든가 발라드에 여러 팝을 소화하는 여러 가지를 집어 삼켜 버리고, 그리고 또 원래 임재범이 소유하고 있던 음역대 훨씬 이상의, 거의 한 옥타브에 가까운 음역대를 손에 넣어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무기들을 손에 넣고 나서는, 마치 이제 이 앞으로의 행보는 이 아티스트에게 있어서는 "내 맘인데 뭘 하면 좋을까?" 왼손에는 포크 300개, 오른손에는 나이프 15개, 그리고 발에다가는 국자 차고... "도대체 뭘 요리를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 보여진다고.

그 동년배 또래의 가수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제 언더그라운드 혹은 헤비락 씬에서 탈출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몰라, 난 노래 연습해" 이러고 지리산에 들어가버리기도 했다. 가끔 수련의 결과물로 앨범을 내어주시고는 앨범에다가 "내공과 외공을 겸비하면 이렇게 되느니라, 아이들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신해철이 평가하는 임재범

2009년 이선희는 20대 시절 시나위의 임재범을 보며 저렇게 부를 수 없어서 절망했다고 한다. 참고링크.

2010년 시나위 신대철은 시나위를 함께 한 보컬리스트 중 임재범을 최고로 뽑기도 했다.
배철수: 야~ 이 친구 진짜 내 맘에 든다 하는 친구가 있었는지?
신대철: 사실은 다 그 특색이 다 있었어요 다... 사실은 임재범 씨가 처음 이렇게 등장했을 때 저는 사실은 '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정말 놀랬으니까요 그 때. 아 노래를 신기한게 그 분은... 저는 연습한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근데 노래를 하면은 입만 열면 노래가 돼요, 이 사람은.
배철수: 오 어휴 야... 이거 진짜 부럽다
신대철: 예... 아마 없을 거에요 그 분 빼고는.
신대철이 말하는 임재범 (배철수의 음악캠프中)

신대철은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8회에서도 "저는 굉장히 임재범 씨 보컬에 대해서 굉장히 저는 좋아했었어요. 야... 우리나라에 저런 보컬이 있었어 정말 대단해"라고 평하기도. 시나위 신대철

2011년 S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현우의 뮤직 라이브'를 진행할 당시 이현우는 처음 음반사에 오디션 보러갔을 때 마침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있던 임재범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아, '내가 과연 가수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무척 고민했다고 밝혔다. '하필이면 임재범이야~!!!'라고.관련 기사

음악 채널 Mnet에서 교수, 가요 전문 기자, 평론가, 뮤지션, 업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50명의 심사위원단이 한국 가요사를 빛낸 전설의 가수 100명을 선정하면서, 레전드 20인의 보컬 아티스트에 선정되었다. "진심을 노래한 카리스마 보이스 임재범은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있는 록 보컬리스트다. 헤비메탈로 시작한 임재범의 강렬한 힘은 시간과 관록이 켜켜이 쌓이며 큰 울림을 갖게 되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내공은 때로는 경외로 듣는 이들을 밀어냈고, 때로는 짙은 잔향으로 듣는 이들을 끌어당겼다. 살아남은 자의 살아있는 목소리, 단 한 순간도 잊힌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그의 목소리에 박수 소리는 더욱 커진다."는 평 레전드 20인의 보컬 아티스트

록&밴드 부문 레전드 20에서도 그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선정되었다. 엠넷 레전드|록&밴드 부문 레전드 20 관련기사 "한국 헤비메탈의 개척자 신대철은 시나위가 '장르 음악'을 좀 더 일반화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그룹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리한다. 시나위는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대표적 언더그라운드 장르였던 헤비메탈을 주류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대중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우직하고 튼실한 존재가 시나위다. 한국의 록 팬들은 1980년대에도 지금도 시나위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라는 심사평.

Mnet Legend 100-Artist 3회:보컬 #2.자유의 정신ROCK편에서는 "묵직한 고음의 파워 보컬, 거칠고 시원한 목소리에 녹아있는 세상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불세출의 로커, Legend 임재범"라고 평했다.[mnet legend 100-artist 3회:보컬] #2.자유의 정신ROCK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임재범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32위에 랭크되어 있다. 링크

음악취향Y Best 100에서는 96위에 아시아나(Asiana) 'Out On The Street'가 선정되었다. "임재범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데, 쇳소리 두성과 비음을 적절히 섞어 만들어 낸 고음은 당대 외국의 어떤 보컬리스트와 견줘도 손색없는 빼어난 실력을 선보인다."는 평 음악취향Y Best 100

음악취향Y Best 100 Heaviness 부문에서 아시아나(Asiana)의 'Out On The Street'는 1위에 선정되었다. 음악취향Y Best 100 Heaviness 50+5 "임재범은 쇳소리 두성과 엄청난 호흡을 바탕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선보인다." "임재범의 육중하면서도 문득문득 한국적 한이 서린듯 소울 냄새를 풍겨내는 목소리, 김도균의 국적을 무색케 하는 무시무시한 피킹의 향연이 주는 이질적인 하모니는 물론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다."는 평.

《월간조선》에서 대중문화·음악평론가 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선정한 결과, 80년대 이후 가수 중 이승철과 공동 1위를 차지하였다. 전문가가 선정한 이 시대 최고의 가수는? 임재범은 이 평가에서 "어떤 곡도 '임재범의 창법'으로 소화해내는 록보컬의 레전드", "기교와 형식을 넘어선 깊이감을 갖춘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조선일보에서 김연우 등의 보컬 트레이너들에게 물어본 최고의 보컬리스트에서 조용필, 이승철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였고, "한국 가수가 갖기 힘든 톤과 파워를 가졌다"는 평.기사

음악 전문가 20인에게 질문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에서도 조용필, 이승철, 인순이에 이어서 4위#, ##

'대중음악 사운드(SOUND)'에서 한국 대중음악 명예의 전당에 추천하는 100인을 10개 분야(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키보디스트,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 레코딩엔지니어, 음반기획자) 10인씩 선정한 결과,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보컬리스트' 10인에 선정됐다. 링크

음악취향 Y에서 선정한 Ballad Best 100에서 "너를 위해"가 13위,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17위에 올랐다.[9]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18년)에서 34위에 Heavy Metal Sinawe 시나위가 선정되었다. 100대 명반 선정은 총 3번의 시도가 있었는데, 첫째로 1998년 잡지 '서브'에서 선정된 리스트가 있고, 둘째로 2007년에 음악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에서 52인의 선정위원을 위촉하고 100개의 명반을 선정해 경향신문에 공개하고 리뷰를 연재했던 리스트가 있다. 그리고 셋째로 2018년에 언론사 한겨레,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가 47인의 선정위원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리스트가 있다. 임재범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은 3차례 연속 선정되었다.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김형석이 프로듀싱 도중에 녹음실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던 임재범을 두고 "가수 10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임재범의 반만큼만 노래할 줄 알면 좋겠다"는 평을 할 정도.#

윤도현은 MelOn PLAYLIST에서 그의 음악 인생에 막대한 영향 끼친 추천곡으로 외인부대의 쥴리를 선곡하고,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일맥을 장식한 밴드, 윤도현이 가수 데뷔를 하게 된 시발점이 된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다. "목소리가 정말로 그런 보컬이 없어요. 뭔가 칼 같기도 하면서 목소리 톤도 되게 와이드하고 굉장히 고급스러운..." 영상

임재범의 보컬적인 장점을 요약하자면, 허스키한 탁성과 맑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컨트롤 능력과 스피드한 음악까지 쉽게 소화하는 뛰어난 리듬감,한 소절조차 흘려 보내지 않는 디테일, 열린 발성을 기반으로 한 엄청난 성량, 저음과 고음을 오가는 넓은 음역대,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자신만의 창법으로 소화해내는 표현력이다.

발성을 보자면 성량에 있어서 상당한 강점을 보인다. 고음뿐 아니라 중저음에서도 성량이 크게 나오고 게다가 야외 콘서트에서도 관중석 뒤쪽까지 울려퍼지는 수준, 거기에 허스키한 음색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파워가 전부 성량이다.[10][11] 파사지오 구간에 진입할수록 터져나오는 듯한 강렬한 고음역 성량도 백미. 게다가 가성이 진성처럼 들려서 따라부르기도 어렵다.
음역대 역시 0옥타브 레♯(D♯2)부터 3옥타브 솔(G5)까지 소화해내는 상당히 넓은 음역을 가졌다(가성 포함).[12]

임재범의 전성기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은 아시아나와 외인부대에서의 활약을 위시한 강력한 록 보컬로서의 전성기. 이 당시의 임재범 거칠고 강렬한 벨팅과 국내 가요계 거대한 성량, 파워풀한 샤우팅을 기반으로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헤비한 메탈 록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괴물 같은 보컬이었다. 특유의 낮은 톤으로 3옥타브 후반대를 발성하는 강력함과 폭발적인 스크래치를 보여주었다.[13]
다만 원래도 고음이 주무기였던 보컬은 아니었고, 나이가 들면서 성대에 팽팽한 내전율과 탄성력이 필요한 파사지오 구간에서의 음 이탈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임재범에게 리즈 시절의 록커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후 임재범은 솔로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감성 보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고해>, <너를 위해>, <비상>을 비롯한 발라드 곡을 잇달아 발표하며 파워풀한 록커에서 부드라운 발라더로서의 전환을 시도하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통해 감성 보컬의 포텐을 제대로 터뜨렸다. 특유의 애절한 음색을 이용한 매력적인 중저음,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고음에 몇몇 사연이 만들어낸 불세출의 감성이 더해져 정상급 발라더의 면모도 제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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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90년대 후반 혜성처럼 가요계에 등장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현재까지 오랜 세월 꾸준히 활동 중이다. 주로 팝발라드, R&B 장르를 무기로 내세우지만, 포크, 모던록, 재즈, 신스팝 등의 다양한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데뷔한지 25년 이상인 현재까지도 최신 트렌드에 맞는 다양하고 젊은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
2. 데뷔 전[편집]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가대 활동을 했다. 자연스럽게 미국 본토의 가스펠과 CCM을 접할 수 있게 된 상황. 박정현 특유의 소울틱한 R&B 창법의 기틀은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9년 2월, 다우니 지역 장기자랑 대회인 <다우니 웨이 아우터 브로드 웨이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보컬 부분 대상을 탔다. 이후 교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여러 콘테스트에서 상위 입상하고[14], 시카고나 뉴욕으로 원정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3년에는 CCM 앨범을 정식으로 취입하여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흔히 박정현 가스펠이라고 알려진 노래들이 바로 이 앨범 수록곡들. 참고로 이 앨범은 2001년에 국내에 발매되었다.

이미 가수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1994년,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UCLA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친 뒤 1996년에 CCM 앨범을 프로듀스 해준 "P.S.I love you"의 작곡가 김덕윤(조셉 킴)에게 스카우트 되어, 혈혈단신으로 당시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땐 한국에서 가수로의 커리어를 쌓는것 보다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한국어도 배울겸 1년만 가수활동을 경험한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막연한 계획이었다고 한다. 교포 친구들을 만나도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은 본인과 본인의 형제들밖에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 1996년 11월 17일 열린음악회에서의 첫 방송 데뷔 영상
이 당시에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억양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편이다. 후술하겠지만 소속사 문제로 정식데뷔는 1998년에 하게되었지만, 방송 데뷔를 한 것은 1996년 열린음악회에서였다. 당시는 영어 본명 ‘리나’를 사용하고 있다. 평소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가수 이선희에 대한 마음을 담아 데뷔 무대 첫 곡을 이선희의 대표곡인 'J에게'로 결정했다고 한다. 불후의 명곡 이선희 편에도 출연하여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열창하는 등 이선희에 대한 존경심을 표출하였다.

그런데 데뷔를 준비하던 기획사가 하필이면 IMF를 맞아 파산하는 바람에 데모 CD까지 만들어놓은 상황에서 1집 앨범 자체가 백지화되고 데뷔 일정이 무산되는 어려움을 맞게 된다. 박정현의 회상에 의하면, 이때 미국에 있는 남자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15] 한국말도 서툴고 생활비도 없어서[16]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1998년 데뷔까지 2년간은 가수지망생 박정현에게 큰 시련의 시간들이었는데, 미국에서 가져온 키보드 하나만 가지고 1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끊임없이 노래를 지으며 외로움을 달래야 했다고 한다. 이때 작곡한 노래 중 하나가 2집 수록곡 "Ordinary"이다. 가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이 과연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성찰의 내용. 들어보자. 2013년 안산 록밸리 페스티벌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직접 노래를 쓴 배경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당시 백지화되었던 1집 앨범은 '박정현 Forever' 라는 앨범[17] 으로 재발매되어 빛을 보게 되었는데, 사실은 파산 이후 판권을 인수한 새 회사에서 가수 동의없이 멋대로 발매한 앨범이다. 거기다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말 그대로 데모 CD인지라, 발매하지 않을 계획이었던 곡이나 다소 미흡한 곡들도 몽땅 뭉뚱그려 발매한 앨범이라 팬들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었다.[18] 아무튼 당시부터 노래 실력 하나는 절륜했던지라 데뷔 준비 시절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프리 상태에서 다행히도 윤종신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전 1997년 2월에 (1997.2.1 ~ 2.24 사이 주말공연으로 추정) 김장훈 만회 콘서트의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19] 당시는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몰라 종이에 써온 자신의 소개말 들을 읽으며 자신을 소개 했다고 한다. 또한 여기서 아직 발매하기 전의 '나의 하루'를 부르기도 했다.

1997년 3월에는 김민우의 4집 앨범 '후애'의 'December(32)'라는 트랙에 듀엣을 참여했다. 여담으로 이 곡의 작사가가 P.S. I Love You의 작사가인 하해룡 씨이다. 앨범작업을 같이 하며 이 앨범에도 참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3. 활동[편집]
3.1. 1998년~ 2002년 첫 번째 전성기[20] <꿈에>[편집]

▲ 1998년 영화 뮬란의 엔딩곡인 "Reflection (내 안의 나를)"

이윽고 1998년 2월 1일, 기존 앨범의 타이틀곡이 될 예정이었던 '첫 눈'을 다시 만든 'P.S. I Love You'를 수록한 1집 'Piece'를 정식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되었으며, 윤종신이 프로듀스한 타이틀곡 '나의 하루'가 라디오 등을 통해 흐르면서 인지도를 급격히 높이게 된다. 후속곡 'P.S. I Love You' 역시 히트하면서 대한민국 대중가수로 입지를 굳혀갔다. 보정 하나 없던 당시 음향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1999년 3월 3일 2집 'A Second Helping'을 발매하였다. 타이틀 곡은 '몽중인'인데 생각보다 후속곡인 '편지할게요'를 타이틀 곡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결정적으로 뮤직 비다오가 ‘몽중인’에만 존재한다. 실제로 어두운 분위기의 '몽중인'보다 '편지할게요'가 더 인기가 많기는 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21]

2000년 10월 28일 3집 'Naturally'를 발매하였다. 타이틀 곡은 'You Mean Everything To Me'. 원래는 유희열이 작곡한 '아무말도, 아무것도'가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러닝타임이 6분에 이르는 관계로 교체되었다.

음악 프로에서는 한동안 1등을 하지 못했다가[22] 드디어 2002년 6월 15일 발매한 정석원이 프로듀싱한 4집 Op.4의 타이틀 곡 "꿈에"가 대박을 치면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8월 17일 MBC 음악캠프)[23]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점에 YB가 부른 응원가 때문에 약간 묻혀버린 감도 있긴 했다. 월드컵 분위기가 한참 달아오를 때라 길거리에 흘러 나온 곡이 하필 그 가수의 곡밖에 없었다. 그래도 쟁쟁한 가수들을 뚫고 1위를 차지한 만큼 본인에겐 제1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기이다. 이 당시는 음원차트 순위나 스트리밍이라는 개념조차 없던때라서 TV 음악 프로의 순위가 곧 실제 인기 순위였다. 이것은 현재까지 그녀가 TV 음악 프로에서의 받은 최고의 성적이다. 물론 차트 1위곡이 이것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24] 사실 ‘꿈에’ 이후에 일본을 위주로 활동했으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을 때는 아이돌 음악이나 미디움템포 발라드가 주류가 된 터라, 그녀의 주력장르인 팝발라드나 R&B가 발붙일 곳이 없어진 것도 있었다. 실제로 박정현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7집에서 미디움템포 발라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이하게 4집 활동 당시 Opus Project라는 컨셉하에 1악장부터 4악장까지 4번의 콘서트를 했다. 이 아이디어는 그 프로젝트는 4집의 앨범명이였던 Op.4[25]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콘서트의 주제가 각각 1악장 Live Storm, 2악장 Adagio, 3악장 Finale 그리고 라이브 앨범이 발매된 후 가진 발매 기념 콘서트 4악장 The Album 콘서트가 그것이다.

Live Storm은 클래식의 1악장과 마찬가지로 메인 주제가 나오는 공연 스타일로 평소처럼 신나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렬한 라이브를, Adagio는 2악장이 슬프고 느린 주제인 만큼 조용하고 어쿠스틱한 편곡을 선보였다.[26] 3장 Finale는 그 주제대로 1악장과 2악장에서 선보였던 음악 패턴을 이 공연에서 들을 수 있으면서도 색다르고 화려하게 꾸민 공연을 했다. 이를 위해서 일본에서 브라스 뮤지션들을 섭외했다고 한다.[27]


▲ 2002년 8월 3일 음악캠프 1위 후보 무대
▲ 2002년 8월 17일 음악캠프 1등 무대
2002년 브라운 아이즈와 함께 월드컵 대표 가수로도 참여했다.[28] 브라운 아이즈와 일본의 CHEMISTRY, Sowelu와 함께 'Let's get together now' 를 불렀고 2002 월드컵 오피셜 로컬 앨범에 'Let's get together now' 와 함께 하림이 작곡한 'Glorious' 가 수록되었다. 후에 무릎팍도사에서 밝히길, 이때 자신이 처음으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고 한다. [29]당시에 활동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 복학을 하려다가 이 제안을 듣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미 등록금을 낸 상태였고 환불은 못 받았다고 한다.

 

 


김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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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록밴드 NELL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기본적으론 보컬·기타를 맡고 있으며 곡에 따라 보컬만, 혹은 보컬·키보드를 맡기도 한다. 그리고 NELL의 전곡 작사·작곡을 맡고 있다. 넬의 모든 멤버들이 작사·작곡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작사·작곡을 한 이유로서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직접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었을 때 가사 전달력이 좋고 사람들에게 좀 더 와닿기 때문이라 언급하였다.

어느새 사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 피부가 상당히 좋다.[6] 'Thank You'나 'Ocean of Light'의 MV에서 그의 미모를 볼 수 있다. 다만 멤버 중 키가 제일 작다. 넬의 멤버 중 유일하게 키가 180cm가 되지 않는다[7]. 덕분에 멤버 중 키가 제일 큰 이재경[8] 옆에만 서면 그 갭이 확연히 드러나는 굴욕을 겪으며, 그래서 그런 건지 이재경은 김종완의 바로 옆에 서는 일이 거의 없다.[9] 그런데 사실 이정훈과 정재원도 꽤 장신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모자를 쓰고 다니는 편.

2002 ETPFEST의 서태지의 곡에 피처링할 때의 모습이나 군입대 사진을 보면 팬들 모두 조용해진다. 물론 그것조차 귀엽다는 팬들도 있지만. 하는 행동 때문인지 김악마씨나 데빌종완으로 불린다. 타블로는 The S.A.D.[10]로 부른다고. 언젠가 02 ETPFEST 전야제 사진이 발굴되어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헤비스모커에다가 술을 너무 좋아하고, 거기에 더해 운동도 잘 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걱정이 꽤 많은 편. 그러나 2017년 10월 V앱에서 전자담배로 바꾸고 술도 거의 끊었다고 답했다.[11]

그 외에도, 넬 팬들 외에는 '넬'을 김종완의 예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김넬", 'It`s Okay'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메이킹 필름에서 "이 뮤직비디오에서 괴리감을 맡고 있다"는 말을 한 것 때문에 "김괴리" 등으로도 불린다.[12]
2. 음악[편집]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김종완은 스위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13] 6월부터 9월까지가 방학이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중 어렸을 때부터 밴드 음악을 좋아하였고 마침 시간도 많으니 기타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일렉트릭 기타, 기타 교본, 레슨 비디오를 구매해서 하루에 평균 15시간씩 혼자 기타를 쳤다고. 이후 스위스에서 귀국한 고등학교 3학년 무렵, 기타를 연주하던 이재경과 드럼을 연주하던 정재원과 친해졌고 1998년 무렵엔 초보 베이시스트였던 이정훈을 만나 아일럿(ilot)[14] 으로 시작, 1999년 7월 31일 밴드명을 '넬'로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5]

밴드 내에서 기본적으로 보컬·기타를 담당하지만 곡에 따라 키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밴드 내의 모든 악기를 다룰 수 있으며[16], 음악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믹스 작업을 할 때 30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는 것. 그 외에 여자가 "내가 좋아, 음악이 좋아"하면 나는 음악이 좋으니 싫으면 가도 좋다고 말한다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기에도 음악은 하고 싶었다거나…
그리고 데뷔 이후 현재까지 1~2년을 주기로 끊임없이 넬 정규 앨범과 싱글을 발표하고 있다. 군대 시절 제외, 특히 1집과 2집은 2001년 한 해에 발매되는 괴물같은 창작 능력을 보이고 있다. [17]

김종완의 작곡과 작사에 대한 진지한 마음은 이하의 일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15년 11월에 있었던 일본 공연을 앞두고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일본어로 된 곡을 낼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일본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한다.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하여 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 100%의 노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일본어를 완벽히 이해하고 내 자신의 말로 가사를 지어야 비로소 듣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선 일본인 여자친구라도 만들어야 되는건가?(웃음)"
라고 답변했다. 훗날 어쿠스틱 편곡 앨범 행복했으면 좋겠어를 발매하고나서 타이틀 곡인 '헤어지기로 해'의 일본어 버전을 발매하긴 했지만, 일본인 작사가에게 번안만 맡긴 정도에 그친다.

곡 작업을 할 땐 갑자기 떠오른 이미지 혹은 스토리로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상의 메모나 일기에서 시작되며 90% 정도는 경험에서 나온 얘기라고 한다.[18]

간혹 막 지어진 노래 제목이 존재한다. 1시 3분에 완성했다고 1:03, 도쿄 악기점에서 영감이 떠올라서 Tokyo, 정재원이 장난으로 외친 '달빛로망펀치'를 영어로 쓴 Moonlight Punch Romance[19], Control이라는 브랜드의 악기로 녹음했는데 곡 받는 사람의 성 이니셜이 K라서 Kontrol 등... 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아낸 제목들도 꽤 많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도 제목의 진짜 의미가 알려지지 않은 12 Seconds나 A.S[20] 등등.

다만 노래의 제목이 가끔 무성의한 것과는 달리, 작사에서의 리듬감과 언어 활용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특히 희망고문 같은 노래의 경우 가사의 라임도 잘 맞아 랩 가사를 써도 잘 쓸 것 같다는 평이 있을 정도.

 

 


하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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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보컬리스트로 4인조 그룹 원티드의 멤버이다.

데뷔앨범은 2002년 7Dayz의 1집 7Dayz이며, 솔로로는 2006년 DQ from Wanted로 데뷔했다.

별명은 하동칠, 하정훈. 연정훈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타공인으로 하고 다닐 정도로 외모가 흡사하다. 나이가 든 요즘은 이정재도 보인다
2. 상세[편집]
2002년 이정, 전상환, 서재호 ,Y.J 등과 7Dayz로 데뷔했다.

그러다가 7Dayz가 돌연 해체된 뒤[2] 이정은 솔로로, 서재호, 전상환, 그리고 4U의 리드보컬이었던 김재석과 함께 YG와 협력관계였던 M-Boat[3]로 소속사를 옮기게 되고, 2004년부터 원티드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200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서재호가 세상을 떠난 뒤 멤버 모두 재활 등을 이유로 활동을 쉬게 되어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사고로 부상을 당하면서 그는 신검 때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2017년 5월 26일 화보에서 이 사고로 몇년간은 기억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 후 2007년, 7Dayz의 멤버였던 이정이 합류해서 7Dayz+Wanted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다.

7Dayz에서 활동할 때는 미성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높고 맑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지만[4], 원티드로 옮겨오면서 엄청난 연습을 통해 지금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본인이 말하길,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고. 7Dayz때와는 확실히 다르게, 현재는 흉성 위주로 굉장히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목소리와는 다르게 상당히 얼굴 선이 가늘다.[5]

7Dayz의 해체나 교통사고로 인한 활동 중지 등, 악재를 많이 겪었다. 이로 인해 공백기가 길었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가 원래 목소리로 밀고 나갔더라면 그저 그런 가수로 남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짙었으나, 연습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가요계에서 꽤 인기가 많다.

과거 그가 부르는 노래가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쓰였으며, 목소리가 굵고 허스키하다보니 보통 사람이 따라 부르는 것도 쉽지 않다. 2012년 이후 본인의 음악장르가 변함과 동시에 창법도 많이 변했다. 2012년 이전엔 끝음마다 바이브레이션을 사용했고, 과도한 체스트를 사용했을때와는 달리, 최근엔 끝음에 바이브레이션을 잘 사용하지 않고 호흡으로 끝음처리를 하며 정말 감정이 과도화되는 부분이 아니라면 바이브레이션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창법 역시 체스트도 적당히 사용하면서 비강부분을 좀 더 넓게 쓰며 고음을 더 편하게 구사하게 됐다. 예전의 하동균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팬들과 현재의 소리를 좋아하는 팬들로 이렇게 호불호가 조금 갈린다. 사실 솔로 활동만을 보면 원티드 때에 비하면 인기가 꽤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국내 톱 가수를 논할 때면 한번씩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나이가 비슷하고 굵은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박효신과 많이 비교된다. 다만 박효신이 굵은 톤에서 완전히 벗어난것에 반해 하동균은 계속 흉성을 이용한 굵은 톤을 고수. 하지만 박효신은 처음 본인의 굵은 목소리에서 서서히 힘을 빼는 것이라면 하동균은 이미 얇은 톤에서 굵은 톤으로 바꿨다는 점이 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굵게 바꿨던 2006년경의 목소리보다 허스키함이 덜해졌고, 일부 곡에선 7Dayz시절의 얇은 소리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굵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음역대가 상당히 넓어서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을 표정 변화없이 부른다.멜로망스 김민석과 함께 시몬스 창법 투톱

여기에 미니 앨범에서부터는 본인이 좋아하는 록 음악의 성향을 드러내며 그로울링[6]등 록에서 쓰이는 창법들까지 구사하게 되었다

보통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녀를 사랑해줘요' '나비야' 같은 발라드곡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2012년에 발매한 EP앨범 Mark부터 직접 작사 작곡을 하며 록 성향의 수록곡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2014년 미니앨범 Word에서는 다수의 수록곡들이 록 성향을 띤다.[7] 라이브 공연과 나는 가수다에서의 공연을 보면 이런 성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인터뷰에 따르면 록 사운드를 좋아하고 들국화, 이승열을 존경한다고. 노래방에서도 인기많은 곡으로는 이정과 듀엣한 '기다릴게'라는 곡이 있다. 이곡은 따로 녹음하고 활동도 하지않아서 거의 안 불렀는데 방송에서 나온지 7년여만에 해피투게더에서 군인들과 함께 불렀다. 3옥타브 레를 무표정으로 올려버린다

하동균의 히트곡 '그녀를 사랑해 줘요'는 원래 박효신이 부를 예정이었다고 한다.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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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원 소속의 여성 듀오 다비치의 멤버이다. 2008년에 데뷔했다.
2. 상세[편집]
데뷔 전부터 인터넷 얼짱으로 알려져 팬카페도 있었으며, (주)리트머스 전속 모델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이후 2005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8년 1월 28일 정규 1집 앨범 Amaranth로 데뷔하였다. 타이틀곡은 미워도 사랑하니까. 이효리, 이미연이 MV에 출연할 정도로 소속사의 기대는 컸다. 이 기대를 반영하듯 2월 22일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지상파 데뷔를 하였다.

10월 17일에는 솔로로 병원에 가다 프로젝트에 참여, 싱글을 발표했다.(솔로로 불렀으나 음원은 강민경이 아닌 다비치 이름으로 발매됐다) 동일곡을 쥬얼리의 은정, 브아걸의 나르샤 그리고 강민경이 각기 부른 것들이 수록했으며, 11월 27일에 박지헌과 듀엣곡 Happy Together를 발표했다.

2009년 5월 21일에는 개인으로 김종욱의 앨범에 수록된 척하면 척에 피쳐링을 가장한 듀엣곡으로 참여하였으며, 12월 22일에 발표된 이승기의 처음처럼 그때처럼에 피쳐링으로 참여했다.

2010년 5월 6일 다비치의 미니앨범 Innocence가 발매되었는데, 이 당시는 강민경이 보이시한 이미지를 벗고 여성스런 이미지로 변신하기 시작한 시절이며 12월 17일 비스트의 손동운과 듀엣곡 '우동' 발매했다.

2011년 4월 27일 발표된 박재범의 곡 오늘밤에 피쳐링 참여했으며 2012년 8월 21일 드라마 <해운대 연인들> OST '이별이 온다' 발매했다 그리고 2019년에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사랑해서 그래'. 자세한 내용은 강민경 1집 참조.
3. 비주얼[편집]


인터넷 얼짱, 세화여고 얼짱 출신으로 데뷔전부터 뛰어난 외모로 화제였다.

키가 167cm으로 큰 편이며 팔다리가 키에 비해 긴 편이다. 게다가 특유의 작은 얼굴 때문에 실물이 굉장히 예쁘다. 특히 하얀 피부 또한 큰 강점이라 화장이 가벼울수록 얼굴이 더 이뻐보이는 형이다.

강민경Instagram


몸매가 굉장히 좋다. 특히 골반이 굉장히 넓고 예뻐서,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려 허리 둘레 24인치, 엉덩이 둘레 37인치이다.
4. 이미지 및 성격[편집]
같은 다비치의 이해리와의 관계는 상당히 좋다. 아마 멤버가 두 명뿐이니 서로에게 맞추기가 타 걸그룹들에 비해 쉬운 것도 있지만 멤버들 인터뷰를 살펴보면 서로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또한 서로 싫어하는 행동 등을 기억해두었다가 상대방 앞에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방송 등에서 보면 다른 걸그룹 등은 서로 칭찬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은 서로 까기 바쁘다.[9]

이 부분에서만큼은 대한민국 여성그룹 중 넘버원. 이해리는 '내가 입만 열면 넌 연예인 생활 힘들어진다'고 농담할 정도이고, 강민경은 유출되면 이해리가 연예인 생활을 하기 힘든 동영상과 도촬을 이해리 전용핸드폰에 보유 중이라며 몇번 언급했다.[10]

순위 프로그램 등에서 1등을 했을 때도 다른 걸그룹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서로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기뻐하면서 각자 친분있는 다른 가수들과 인사하며 따로 노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앵콜 무대에선 강민경은 깐죽, 이해리는 째려보기. 이에 대해 라디오 방송에서 언급하니까 진짜 친한 형제자매는 남앞에서 친한척 안하잖아요.라고 대답. 서로 간에 왕래가 잦고, 여행도 둘이 같이 다니며 가족 같다고 하는데, 이제는 여행만큼은 서로 싫다며 다른 좋은 사람과 하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둘이 해외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애초에 365일 중 360일은 붙어있다 언급하기도 했다.

이해리와 강민경의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진 사실로 강민경을 다비치로서 이해리와 팀을 짜는게 소속사의 첫번째 계획이었으나, 이후 변경되어 광수사장의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티아라[11]의 멤버로 강민경이 내정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해리는 결국 데뷔를 못한 누군가와 보컬그룹이 되는 식이었다는데, 다행히 서로가 가장 원하던 형태로 데뷔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데뷔 초 강민경의 미니 홈피를 보면 같은 멤버 이해리를 나의 뮤즈라고 찬양하는 등, 존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따르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나이 차이도 좀 있고, 이해리가 워낙에 넘사벽의 가창력을 갖고 있으니까는 페이크이고 현재 실생활에선 매일 까불고, 개기고, 자기를 놀린다며 이해리가 매번 방송에서 하소연 중이다.

데뷔때 가졌던 가장 큰 이미지는 노안. 디씨인사이드에서 뽑은 성숙 노안인 여자연예인 1위에 올랐다고 한다. 6위를 했던 배우 임수향이 카톡으로 놀렸는데 그것을 캡쳐하여 올리면서 '그래요.... 땡큐!!!!' 라는 트윗을 남겼다. 데뷔 초 라디오에서 동안소리를 듣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다만, 내 옆에 그대인 걸 발매당시 나온 아는 형님에서는 다비치가 발라드 그룹이라 이런 노안 이미지가 결과적으로는 득이 되었을 것이라 밝혔다. 오히려 너무 어려보였으면 본인들이 부르는 노래에 사람들이 공감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12]

<스타 골든벨> 등에서의 발언을 보면 데뷔 초의 이러한 노안 이미지 때문인지 또래 여자 아이돌들도 접근하기 어려워한 듯하다. 이건 비슷한 나이 대의 여자가수들 대부분이 아이돌 광풍의 시대에 데뷔했기에 아이돌가수출신이 대부분인데 반해, 다비치는 드문 보컬그룹 출신이라는 것이 크고, 나름 데뷔가 빠른 선배인데다가 키도 큰 편에 성숙해 보이는 인상이기도 하기도 해서 그럴만 했을 듯 하다.

비록 이런 이미지가 있다곤 하였으나 실제로는 늙어 보인다기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느낌이 강하였다. 실제로 노안 관련 이야기는 데뷔 초에나 들었던 이야기이고 이젠 오히려 어려보이는 편이다. 과거 자신은 28세쯤이 되면 동년배 중 제일 동안이 될 거라고 자신했는데 그게 실화가 되었다.

선배들에게는 애교있는 스타일이라곤 하는데, 이해리는 민경이가 남자에게만 애교있다고 깠다. 강민경의 반응은 "애교는 당연히 남자에게 부리는 거죠"라고 하였지만 이해리한테 하는거보면 성격 자체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애교 많은 성격인 듯 하다.

2010년까지는 굉장히 마른 몸매를 유지했는데, 2011년부터는 운동을 통한 탄탄한 몸매로 변화해 가고 있는 중이다. 박정현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밝혔는데, 어떤게 예쁜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무작정 마른 것보다는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고.

팬들에게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팬싸인회에서 눈에 꿀 떨어지는 영상을 보자. 본인의 유튜브를 개설한 이유도 공백기에 떡밥가뭄으로 심심해 할 팬들을 위해 개설하였다고 밝혔고 브이앱도 팬들을 생각해서 스케줄 전후로 자주자주 해주는 편이다.

성격은 방송등에서 보이는 면을 보면, 상당히 개구지다. 카메라 앞에서는 의젓하고 기품있게 보이려 노력하는것 같은데, 조금만 긴장 풀면 온갖 장난을 치는 모습이 많이 찍힌다. 딱 부잣집 영애 혹은 남고딩이었다. 이해리의 폭로에 의하면 취미, 특기, 특이한 습관이 남 놀리기라고 한다. 주로 그 대상은 같이 활동하는 언니인 이해리다.

2011년 12월 13일에 방송된 라디오방송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선 이해리를 놀려서 패닉에 빠뜨리고 그것을 핸드폰으로 촬영까지 한다고 이해리가 눈물의 하소연을 했다. 이날 이해리는 평소에 잘 안쓰던 강민경라는 호칭까지 쓰며 분노를 토로했다. M WIDE에서 강민경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남 놀릴 때 너무 기분이 좋고 당하는 사람은 즐기는 것 같단다. 이해리 曰 그건 니 생각이지.

본인의 성격을 살려 예능감이 살아나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는 라디오 혹은 무대에서 보여주는게 대부분이고, 방송에서는 예능 출연이 드물어서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해외팬들이 부를때는 minkie로 불리는 듯. 그보다 대중적인 별명은 거북이 포켓몬스터인 꼬부기. 여기에 성을 붙여서 강꼬라고도 많이 부른다. 무대에서 노래 부를 때 한 팬이 '꼬북아'라고 소리치니 실실 웃으면서 노래부르는 짤이 돌아다닌다. 2019년 본인의 생일엔 꼬부기가 그려진 생일 케이크로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하였다.
또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과 두루 친하다고 하는데, 일단 알려진 건 소녀시대의 전 멤버 제시카. 뮤직뱅크 1위 발표 후 이해리는 버려두고 1위를 한 소녀시대의 제시카를 가지고 노는 짤이 돌아다닌다. 그 외 카라의 구하라와는 데뷔 전부터 친한 사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고 신세경, 임수향등과도 함께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었다.

웃음을 매우 못참는 편이다. 이해리의 경우는 그래도 실수가 있더라도 참으려고 하는 편인데 강민경은 봉인해제하고 그냥 터져버린다. 보통 다비치가 방송사고가 나는 루트도 강민경이 먼저 터진 뒤 이해리가 한번 웃음을 참지만 강민경이 계속 웃고 있는 상태여서 이해리도 따라 웃음보가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6회 6화 회차정보 공식영상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방송시간, 6회 6화 재방송 편성정보

JTBC

금요일 오후 10:30 ~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6회 다시보기 6재방송 보러가기는 위 시간표 참고하셔서 감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시청률

1회 - 2.6%
 
2회 - 1.8%
 
3회 - 1.5%
 
4회 - 1.8%
 
5회 - %
 

 

 

 

예능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다시보기 보러가기 재방송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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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비긴어게인 - 인터미션 재방송 다시보기 6회 보러가기 JTBC 공식영상 회차정보 타임라인 등장인물 출연진 방송시간 넷플릭스 시청률 6화 예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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